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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성전
by Stephen Witmer2023-07-15

기독교 고전으로의 초대 

아일랜드 시인 셰이머스 히니는 어떤 시인과 시를 시장 노점에 전시된, 다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 당신의 눈을 즐겁게 하는 신선한 농산물에 비유한 적이 있다. 반면에 어떤 시인과 시는 당신 안에서 자라는 식물과 비슷하다. “농산물을 검사하기도 전에 이미 생명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통과하는 것 같이 느끼는 경우이다”(Stepping Stones, 50).


많은 독자에게 조지 허버트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변혁적 시인이었다. 세상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독자의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고뇌에 찬 윌리엄 쿠퍼는 허버트의 시에서 위안을 찾았다. C. S. 루이스는 가장 큰 영향을 준 열 권의 책에 성전을 넣었다. 철학자 시몬 베유는 허버트의 시 “사랑(III)”을 낭송하는 동안 그리스도가 직접 내려와서 자신을 사로잡았다고 고백했다 허버트를 사랑한 다른 작가로는 리처드 백스터, 찰스 스펄전,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 W. H. 오든, 그리고 T. S. 엘리엇이 있다.


허버트의 시가 거의 다 종교적이지만, 그의 시가 단지 그리스도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T. S. 엘리엇은 허버트의 시가 종교적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몇 년 전, 팟캐스트에서 토론하고 싶은 시를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은 영국 배우이자 자칭 타락한 가톨릭 신자인 앤드류 스콧이 꼽은 것도 허버트의 시였다. 


연설가, 목사, 시인


조지 허버트는 누구이며 무엇을 썼는가? 허버트는 1593년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생애 초기에 학문으로나 직업으로도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그는 학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케임브리지 대학의 펠로우가 되었고, 1620년에는 대학의 권위 있는 연설가로 선출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겪었다. 그에게 딱 맞을 거 같았던 법정 경력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부유한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진로를 타진하던 중에 결국 솔즈베리 근처의 베머턴 마을에서 성공회 교구 목사가 되었다. 거의 무명의 목사로 삼 년을 사역한 그는 마흔 살 생일 직전인 1633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 시대에 허버트는 세련된 라틴어 연설로 존경받았다. 그의 유일한 산문집인 시골 목사들을 위한 짧은 지침서, The Country Parson은 사후에 출판되었다. 그 글은 수백 년 동안 널리 영향력을 미쳤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의 연설도, The Country Parson도, 잠언집(천 개 이상)도, 또 라틴어 시도 그가 동시대 독자들에게 미친 놀라운 영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가 끼친 영향력을 제대로 알려면 사망 당시에는 출판되지 않은 약 160편의 영시(숫자는 당신이 어떻게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를 담은 얇은 책에 주목해야 한다. 임종 당시 그는 친구인 니콜라스 페라에게 모든 시를 넘기면서 태워버리거나. 아니면 페라가 보기에 괜찮다면 인쇄해도 좋다는 말을 남겼다. 시를 읽은 페라는 깊이 감동되었고, 즉시 성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즉각적인 성공을 가져왔다. 


성전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는가


성전은 세 부분으로 이뤄졌다. 첫 번째 “The Church-porch”는 다소 교훈적이고 도덕적인 시로 구성된 77개의 연으로 구성되었다. 때로는 기발하고 재미있고 또 기억에 남는 이 부분은 중심 내용으로 이어지는 도입 역할도 하지만, 이 책의 주요 매력은 아니다. 교회의 역사와 미래 심판의 비전에 관한 긴 시로 이뤄진 마지막 부분, “The Church Militant”도 핵심 매력은 아니다. 허버트가 미친 거대하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은 중심 섹션, “The Church”로 설명된다. 비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독자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교 시인으로 그를 꼽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실린 시 때문이다.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1. 허버트는 하나님께 직접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허버트가 가장 좋아한 신학자였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물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죽음을 앞두고 큐레이트에게 물려주었다). 허버트의 전기 작가 존 드루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속 자전적 특성이 허버트의 시가 자전적 느낌을 띠는 데에 영감을 주었다고 말한다. 고백록과 마찬가지로 허버트의 시도 상당수가 하나님에게 직접 말하는 형태이다. 이 점은 그의 시에 매력 넘치는 진지함과 더불어 절박함을 가져다준다. 모든 시가 신선하고 생생하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다. 기도로 이뤄진 모든 시는 결코 사소하거나 가볍지 않다. 리처드 백스터가 말했다. “허버트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처럼 하나님께 말한다. … 마음으로 쓴 시이자 동시에 하늘의 시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The English Poems of George Herbert, xxi). 많은 독자가 여기에 동의했다.


2. 허버트는 참으로 정직하다


안전하고 감상적인 시를 쓴 경건한 시인이라는 오해와 달리, 허버트의 시는 매우 정직하고 심지어 날것에 가까운 감정까지 드러낸다. “The Collar”에서 그는 요나와 같은 반항심을 보여준다. “denial”은 “나의 헌신이 당신의 침묵하는 귀를 뚫을 수 없을 때, 내 시처럼 내 마음이 상하였으니, 내 가슴은 두려움과 무질서로 가득하나이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그의 초기 전기 작가 아이작 왈튼에 따르면, 허버트는 성전 속 시를 “주인 되신 예수님의 뜻에 나를 온전히 복종시키기 전까지, 하나님과 내 영혼 사이에 있었던 많은 영적 갈등의 그림”이라고 묘사했다(George Herbert: The Complete English Works, 380). 약함과 영적 투쟁 그리고 육체적 질병 및 수많은 실망 가운데서 쓴 시가 성전이다. 허버트의 약함이야말로 독자를 그의 시에 깊이 빠져들게 한다. 


3. 허버트는 다가가기 쉽다


시라는 장르는 단순하거나 얕지 않다. 그러나 허버트는 일상적인 이미지(창문, 꽃, 폭풍, 도르래, 화환)와 쉬운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의 시를 어떤 학자는 “평범함의 미학”으로, 또 어떤 학자는 “뛰어난 명확성”으로 평가하는 이유이다. 명료함 덕분에 그의 시를 읽는 일반 독자는 좌절감에 빠져 혼란스러워하기보다는 새로운 깊이를 발견한다. 읽을수록 깊이 숙고하면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4. 허버트는 언어의 장인이다


허버트는 끝없이 창의적이며 주로 형태시(“The Altar” 및 “Easter Wings”에서와 같이 주제가 특정한 모양을 가진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를 썼고, 그 속에 기도와 우화, 소네트와 찬송뿐 아니라 성경 구절(“골로새서 3:3”)도 곳곳에 숨겨놓았다. 같은 연으로 반복하는 시는 성전에서 찾기 힘들다. 그의 시가 가진 형태의 신선함은 놀라운 적합성뿐 아니라 단어 및 구문의 아름다움과도 결합한다. 그림을 떠오르게 하고 기억에 남는 언어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다. 


• “하루 종일 내 심장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 “위를 향할 때마다 당신을 높이는 손”

• “당신을 넘치도록 찬양하나이다”

• “나의 기쁨은 울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나의 슬픔은 노래하기 위함입니다.” 

• “그 심장 속 맥박까지도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 “눈에 가득 찬 당신의 사랑”

• “당신은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보나이다.”


이런 단어와 문구는 시를 낭독하는 혀에 생기를 일으키고 우리 마음에 불을 붙인다. 


5. 허버트는 크신 하나님을 믿었다


허버트는 하나님의 크심에 매료되었다. 헬렌 윌콕스는 “성전 속 모든 시의 주제는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다”(The English Poems of George Herbert, xxi)라고 썼다. 그게 다가 아니다. 허버트는 시 자체를 하나님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로 보았다. 봉헌 시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주님, 첫 열매를 당신께 드리나이다. 그러나 이 시는 내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시는 당신에게서 왔기에 다시금 당신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허버트의 하나님은 주권자였다. 허버트의 신학과 시가 근본적으로 하나님 중심의 칼뱅주의라고 진 에드워즈 비쓰는 주장한다. 허버트는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심히 좋은 소식으로 찬양했다. 다음은 “Providence”의 한 연이다.


우리 모두는 당신의 권능과 사랑을 기뻐합니다

      정확하고 초월적이며 신성하신 권능과 사랑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이시는 분,

      세상 만물이 당신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또한 당신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나이다.


그의 시에서 하나님이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움직인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그분의 뜻은 최고이며 또한 좋은 소식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선택과 불가항력적 부르심의 교리를 받아들인 허버트가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보편적 호소라는 특징을 전혀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비쓰가 주장하듯, 종교개혁 전통에 뿌리를 둔 허버트의 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내부로부터” 전달하여 모든 종류의 독자와 연결한다. 


성전 제대로 읽기


허버트를 처음 접하는 독자가 성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세 가지를 제안하겠다. 


먼저 내용, 형식, 언어 또는 기타 이유에 관계없이 마음에 드는 시를 찾아라. 그리고 그 시와 함께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라. T. S. 엘리엇의 말이다. “모든 시가 다 그렇듯, 허버트의 시를 감상할 때도 시작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시인의 마음을 꿰뚫기 전에 시를 즐겨야 한다. 이해하려는 수고가 헛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라면 이해하기 전에 먼저 즐길 수 있어야 한다”(George Herbert, 28-29). 허버트의 시를 충분히 많이 읽음으로 마음에 드는 시를 먼저 만나도록 하라. 


둘째, 전후 맥락에서 성전과 연결된 시를 읽고, 이어서 더 큰 맥락에서 이어진 시를 읽어라. 허버트의 시는 순서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허버트의 고통과 고군분투를 다루는 “Grief”와 “The Crosse”가 “many deaths”를 통해 그를 “once more smell the dew and rain”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the Flower” 바로 앞에 온다는 점은 중요하다. 성전에는 주제별로 시를 모아놓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시퀀스에는 예배당의 여러 부분에 대한 시가 담겨있다 (“Church-lock and key” “The Church-floore” “The Windows”). 특정 문맥 내에서 개별 시를 읽는 것은 새로운 울림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신선한 빛을 비춰준다. 


또한 허버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corpus)와(성전The Country Parson 사이에는 중요한 연관성이 있다) 삶(존 드루리의 Music at Midnight는 이 점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맥락 내에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허버트는 성경을 사랑했고(“O Book! Infinite sweetness!”), 그의 시는 성경에 대한 인용과 암시로 가득하다. 이런 다양하고 넓은 맥락에서 시를 읽는 것이 유익하다. 


세 번째로, 하나님과 당신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에 허버트의 도움을 받아라. 그의 간절함과 통찰력, 그리고 열정과 정직 및 경건이 큰 도전과 감동을 줄 것이다.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은 당신의 가슴과 마음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그의 시는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바꿀 것이다. 셰이머스 히니의 말을 빌리자면, 허버트의 시가 당신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라.



원제: The Temple: A Reader’s Guide to a Christian Classic

출처: www.desiringgod.org

번역: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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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Stephen Witmer

스티븐 위트머는 Pepperell Christian Fellowship의 목사다.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을 가르치며, 소규모 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단체인 Small Town Summits의 공동 설립자로 섬기고 있다. A Big Gospel in Small PlacesEternity Changes Everything의 저자이다.